바레다무. 나비. 영혼. 자살.

  강아지를 키웠다. 작고 하얀 강아지였다. 약간은 딱딱한 느낌이 드는 그 발바닥을 꼭 쥐고 있으면 그 녀석은 잠시간 바둥대다 바레타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인지 금세 느른한 고양이처럼 고롱대며 무릎 위에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한 나날들은 몇 년이고 지속되었고 때문에 바레타는 그 강아지가 죽을 수 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자주 잊고 있었다. 마치 저 자신에게 중요치 않은 것들을 머릿속에서 밀어내듯 불가항력적으로. 그는 아무래도, 데샹의 천진한 미소를 보며 이래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차가운 메스가 눈을 감은 생명체의 배를 가르고 장기들을 꺼냈다. 그 작은 몸뚱어리 어디에 꾸역꾸역 들어갈 곳이 있었는지 뽑아내도 뽑아내도 대장은 자꾸만 흘러나왔다. 다시 주워담을 수 없는 말이나 물처럼 자꾸만. 바레타가 울먹였다. 까미유, 꼭 이래야 하나? 혐오감이 미미하게 깃든 목소리에 데샹이 물었다. 그래서, 내가 싫어졌어? ―아니…… 고개를 내젓자 데샹이 메스를 차가운 알코올이 그득 담긴 대야 속으로 던져 넣었다. 한 방울이 튀며 뺨이 금세 시려왔다.

  다음 날, 바레타는 무릎을 적시는 축축한 감각에 잠에서 깨어났다. 추한 몰골로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묻혀 있던 그 강아지는 여전히 바레타의 무릎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무게감도 낯익은 감각도 없었으나 바레타는 막연히 그것이 그 강아지였음을 알아차렸다. 제 수명에 비한다면 그래도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녀석이 죽는 순간까지 이름조차 얻지 못한 채 땅속에 묻혔던 탓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바레타는 덜 덮인 흙을 쌓아올리며 강아지의 땅 위로 비죽 튀어나온 귀를 검지로 찔러보았다. 컹, 하고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바레타는 그날 아침 제 무릎을 짓눌렀던 그것이 녀석의 영혼이었음을 알아차렸다. 강아지는 한참을 제 시체 주위에서 코를 킁킁댔다. 맡아질 리 없을텐데 지독하게 불쌍한 얼굴로.

  굳이 전환점이라면 그 날이었을 터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바레타는 데샹 곁의 반딧불을 향해 손짓했다.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던 데샹이 말했다: 뭐해, 거긴 아무 것도 없어.

  데샹의 곁을 맴도는 검은 반딧불과 자신을 거둔 신경질적인 여자의 어깨를 자꾸만 갉아먹는 부사 빛깔의 쥐, 회색 정장을 빼입고 고상한 체 거리를 오가는 사내들의 시계 같은 영혼들이 자꾸만 바레타를 짓눌렀다. 멍청하게 길가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는 날들은 점차 늘어만 갔고 손 안에 떨어지는 지갑들의 수도 점차 줄어만 갔다. 그러던 와중, 그는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공허히 비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눈도 코도 입도 마치 우주 어딘가의 블랙홀에 잠식된 양 온데간데없이 어그러져 인지를 방해했다. 바레타는 자신이 멍청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씨발스러웠다. 여자의 히스테리도 그에 비례해 늘어났다. 데샹이 위로하듯 제 손을 쥐었고 그의 손끝에서 피어오른 녹빛이 짓물린 제 거미의 주둥이에 뜯겨나가는 환상을 보고서 바레타는 조심스럽게 그의 두 손에서 제 손을 빼냈다. 데샹의 불안을 속달하듯 검은 반딧불들은 웅웅대며 바레타의 거미들을 공격했다. 그 날 이후 데샹은 바레타에게 많은 관심을 주지 않았다. 마치 본능적으로 제게 이로운 것을 찾아가는 곤충들의 몸짓에 바레타는 희미한 전율을 느꼈다.

  히카르도 바레타의 열일곱번째 겨울은, 그러니까, 그러한 형태였다. 바레타는 이제 이 모든 일련의 변화들에 대한 적응기에 들어서 있었다. 마치 연옥처럼 짐승들이 넘쳐나는 뒷골목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그는 차라리 잠시 시선을 돌리기를 택했다. 그는 바쁘게 제 몸뚱어리를 종종걸음으로 좇아가는 느릿한 영혼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저 환상체들과 실재하는 인간들의 상관 관계는 도모지 명확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가 알게 된 단편적인 것들이라고는 그 환상들이 사라지면 인간은 뿌리를 잃은 장미꽃처럼 머잖아 시들어버린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런 흔해빠진 죽음을 머금은 거리에도 비는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레타는.


보았다.


  나비는 마치 꽃가루를 털어내듯 빗속에서 빛가루를 뿌리며 수척하게 퍼덕였다. 빗줄기와 함께 바람처럼 사라진 인파가 유기한 이 작은 생물체를 어찌할 길 없이 바라보았다. 희붐한 빛을 뿜어내는 나비는 바레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바레타는 실재하는 것들을 인지하는 영혼을, 이러한 유의 환상을 맨 처음 그에게 기묘한 형태의 악몽을 실현시켰던 강아지 이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때문에 히카르도 바레타는 한참을 망설였고, 옷 속에 감춰진 허벅지를 타고 빗줄기가 흘러 내렸을 때 즈음에야 허공에 손을 뻗어낼 수 있었다.

  어룽진 나비가 바레타의 손 끝에 앉아 날개를 접었다. 무거운 빗물을 견뎌낼 수 없다는 듯 더듬이를 파르르 떨어대며. 한 손을 들어 비를 가리자 제자리서 날개를 퍼덕인다. 바레타는 한 손을 들어 자신의 손등 위 작은 지붕을 만들었다. 나비는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주인을 찾아가지 않는 건가. 약간의 불안감이 엄습했으나 스스로가 떠나가지 않는다면 어찌할 길이 없는 것이다. 잠시간 도깨비처럼 내린 비가 점차적으로 그쳐가는 것을 확인한 바레타는 손등을 세차게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비가 발작하듯 푸드덕대며 바레타의 곁을 맴돌았다. ……돌아가.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없을텐데, 빛으로 이루어진 그것을 향해 내뱉는 제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나비의 날갯짓은 더욱 비대해져만 간다. 빛가루가 아직 먹구름이 그득한 하늘 아래 흩뿌려졌다. 스스로가 발하는 빛에 가려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바레타는 그제야 인지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작아지는 거다. 혹은 저 날갯짓으로 흩뿌리는 빛가루가, 어쩌면 저 나비의 본체를 갉아 내는 빛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자 이름도, 아니, 얼굴도 성별도 알지 못하는 이에 대한 동정심이 치솟았다. 바레타는 영혼을 잃은 이들의 종말을 알고 있었다. 타살에 대비하는 영혼은 육체를 떠나가고 자살에 각오한 영혼은 점점 제 속으로 파고든다. 특별할 것 없는 죽음일 터였으나 한 가지 지금까지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도움을 바라는 직접적인 손길이었다.

  충동적인 물음을 바레타는 내뱉는다. 도움이 필요한가? 나비가 크게 퍼덕였다. 그리고 바람결을 타고서 제 원하는 곳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바레타는 그것을 따라 달렸다. 신발 속에 들어찬 물에 걸음을 옮길 적이면 철벅이는 소리가 유난하게 울린다. 얼굴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이 땀과 엉겨 엉망이 되었다.

  나비가 당도한 곳은 적당히 구색을 갖춰 지어진, 써느러운 저택이었다. 철창 같은 대문이 삐걱이며 바람에 따라 흔들리기를 반복했는데, 바레타는 들어서기를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용기를 내듯 한 걸음을 내딛어 정원으로 들어섰다. 적당히 사람이 사는 구색만을 갖춰둔 냄새가 짙은 곳이었다. 고사한 정원이 싯누랬고 비와 더불어 꼭 짚단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돌길을, 그 새를 메운 잡초들을 짓이겼다. 저택으로 그리고 바레타는 낮은 곳에서 위로 들이밀어진 날카로운 검날에 멈칫했다. 써느러운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바레타는 은빛 머리카락을 짧게 쳐올린 소년의 붉게 달아오른 눈가를 보았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양 겁에 질려 간헐적으로 떨려오고 있는 입술은 그러나 소년의 것처럼 전연 느껴지지 않았다. 소년의 주변을 감싼 나비의 무리는 대개 온전치 못했다. 바레타는 그 이질감 속에서 눈을 내렸다. 소년에게서도 희붐한 빛이 비져 나왔기에 망설임없이 그가 내민 검의 날을 쥐었다.

  "……!"

  날카로운 통증이 손바닥에서부터 팔꿈치를 타고 흘렀다. 소년은 그러나 영혼의 일부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제야 그가 나비의 주인이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어쩌면 그 나비가 바란 것이 무엇이었는가도 희미하게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바레타는 가로로 자상이 길게 새겨진 손바닥을 안쪽으로 말아쥐었다.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소년은 열일곱 난 바레타보다 머리 하나는 너머 작은 키였다. 기껏해야 열네다섯 즈음 되었을 법한 그는 팔을 한 번 신경질적으로 휘둘러 제 주변을 날아다니는 나비를 거머쥐었다. 파스스 빛가루가 그 주먹 속에서 떨어져나왔다. 그 광경에 바레타는 백치처럼 입술을 뻐끔댔다. 무슨, 아니, 도대체 왜?

  "무슨 짓이냐."

  화급히 소년의 손바닥을 펼쳤다. 보이는 것은 고사하고, 제 영혼을 죽인다고? 부절이 떨어져나간 그 생명체가 소년의 손아귀에서 발작했다. 우윳빛 액체가 질금 새어나오는 몸뚱어리는 이내 허물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찢겨나간 날개와 잘려나간 더듬이를 움찍대면서도 나비들은 그의 곁을 떠나가지 못했다.




  아…… 누가 저 대신 좀 써주실래여…… 사탕…… 사탕 드릴게요……


1) 그러니까 바레타는 사람의 영혼을 조금 특이한 형태로 보는 과인데 하얀 나비가 발작하듯 저를 찾아와서 다급함을 느끼고 나비를 따라간다. 나비가 당도한 곳은 어린 다이무스와 상처 입은 나비들이 그득한 저택. 바레타는 소년이 폐허가 된 저택에서 자꾸만 제 영혼들(빛나비)을 죽이는 것을 보는데 이내 그를 저지하게 된다. (←지금 여기!) 하지만 바레타가 떠나가면 소년은 다시 나비를 죽이기 시작한다. 


2) 바레타는 이후 자주 소년의 저택을 찾아가게 되는데 어느날 돌아간 저택은 그가 보았던 폐가가 아니게 되고 되려 사람이 살고 있다 주장하듯 생기 넘치게 변한다. 하지만 여전히 저택에는 소년 혼자만이. 소년은 강한 척 하지만 의외로 겁이 많다. 마음의 벽이 허물어질수록 어리광을 부리고 떼를 쓰고(마치 한 번도 그렇게 굴어보지 못한 양) 바레타를 곤란하게 하는 일도 잦다. 하지만 바레타는 그것도 좋음. 점점 소년이 좋아지고 있다.


3) 바레타는 소년에게 묻는다. 부모님은?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색하다고 생각하는데 소년은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흰 양말을 그러올리며 여상스럽게 대답한다. 기다리고 있는 거다. 뭘? 다들 돌아오기를. 바레타는 기분이 이상해진다. 꼭 다들 소년을 버리고 떠난 것처럼 들려서. 바레타는 입을 다물고 소년은 주름진 셔츠를 펼쳐내며 바레타에게 묻는다. 자고 가. 명령조인데 애원처럼 들린다. 바레타는 저녁에 데샹과의 약속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작게 고개를 내저으려 하지만 소년은 바레타를 보고 있지 않다. 결국 바레타는 몇 번 입술을 뻐끔대다 거절의 말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곤 대답한다. 어디서 자면 되나?


4) 바레타와 소년은 이전의 몇 달, 혹은 몇 주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를 그날 나누게 된다. 바레타는 소년에게 형제가 둘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년은 바레타가 뒷골목의 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소년은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렸지만 바레타에게 설교 섞인 말들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소년은 바레타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히카르도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바레타. 그는 그렇게 불렀다. 바레타. 바레타는 소년의 이름을 물었다. 다이무스. 성은? 기억나지 않는다. 결국 바레타는 소년을 이름으로 부른다. 다이무스. 다이무스는 무릎을 세운 채 페치카 앞에서 고갤 묻었다. 울지 않는다. 불구하고 서럽다. 저택이 소년과 함께 울고 있다. 바레타는 등 뒤로 내려앉는 물기가 무겁다.


5) 되게 클리셰적이지만 바레타가 새벽에 깨 소년의 방으로 찾아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소년은 보이지 않는다. 저택은 컴컴하고 기이하게도 발밑에는 웅덩이가 질척댄다. 바레타는 저택의 방 문들을 하나하나 다 열어보기 시작하는데 결례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지만 일단 소름이 돋아 소년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 있다. 그러던 중 고저택에 흔히 있을법한 쪽문을 찾아내면 좋겠다. 그는 계단을 내려간다.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축축한 공기와 퀴퀴한 냄새가 진동한다. 하지만 통로를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정갈한 방 하나가 나온다. 그곳에는 어린 아이들의 흔적이 그득하나 장난감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가검과 코트, 절그럭대는 소리를 내는 작은 갑옷 따위의 것들. 바레타는 그곳에서 제 무릎 께까지 오는 나무 상자에 몸을 기댄 채 잠든 인영을 본다. 소년? 아니다. 훨씬 크다. 장성한 사내다. 바레타가 걸음을 옮기자 먼지가 풀썩 일어난다. 쪽창으로 들이치는 달빛에 보이는 머리카락은 은발이다. 닮았다. 바레타는 사내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감긴 눈꺼풀이 금방이라도 떠질 것만 같았는데─아니었다. 바레타는 무척이나 느릿하게 뒷걸음질 쳤다. 상자의 뚜껑에 한쪽 뺨을 댄 채 잠들듯 죽어 있는 사내. 고집스럽게 다물린 입술과 희게 질린 피부와. 소년과 꼭 닮은. 바레타는 제가 걸어온 길을 도망치듯 뛰어올랐다. 바레타는 저택을 뛰쳐나온다. 여우비가 내린다. 뒤를 돌아본다. 저택은 여전히. 폐허다.


6) 바레타가 본 영혼들은 이제껏 작은 규모의 것들밖에 없었으면 좋겠다. 모종의 이유로 멸문한 홀든가에서 다이무스는 유령처럼 떠도는 존재였으면 좋겠다. 벨저와 이글은 죽었다. 육체는 어릴 적의 추억을 그득 담아둔 방 속에 갇혀 고사했고 다이무스의 영혼이 저택 그 자체다. 바레타가 마주한 소년은 다이무스이되 다이무스일 수 없는 그의 절제된 무의식. 단 것들을 마음껏 집어먹고 마음대로 타인에게 응석을 부리고 수업도 듣지 않는다. 그는 그것이 자유라고 느끼는 어린 아이다. 제 몸이 죽은 것도 알지 못한 채 제 아우와 가족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만약 실제의 다이무스라면 기다리는 짓은 않고 스스로라도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을 터였으나 가장 밑바닥의 어린 다이무스는 가장 연약하고 가장 멍청하고 가장 수동적이다. 어린 다이무스가 바레타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이무스의 영혼으로 재건된 저택은 명멸하듯 예전의 빛을 되찾았다 꺼뜨리기를 반복한다. 다이무스는 자신이 더는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없음을 알고 있고 때문에 어린 다이무스가 자꾸만 영혼의 편린인 나비(프쉬케)를 죽이면 좋겠다. 일종의 자살인 셈. 바레타에게 머물러 달라 부탁했던 것도 마지막을 지켜줄 사람을 바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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