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다무. 호의.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좋을까. 그래, 사내는 새로 부임해온 문학 선생이었다. 아이들은 그를 로라스라 불렀는데 수업을 할 때를 제하곤 지독한 에스파냐식 발음이었던 그는 자신을 알베르토라고 소개했다. 다이무스 홀든은 그를 제법 좋아했다. 단순한 동경보다는 손이나 뺨에 혀를 대보고 싶다는 약간은 일그러진 형태의 것이었다. 그는 또 알베르토 로라스의 곁을 맴도는 작은 요정을 좋아했는데, 그것은 푸른 빛깔을 띤 여인이었다. 그녀는 늘 하이얀 꽃잎과 노오란 꽃술을 한 백합을 뜯어먹고 있었다.
  밤이 길었다. 알베르토 로라스는 요정을 바라보며 다이무스 홀든을 끌어 안았다.
  말캉하던 살에 점차 박히기 시작한 굳은 살을 엄지로 문지르자 발가락을 곱쳤다 펼치기를 반복한다. 소년의 발바닥을 손가락 끝으로 더듬어 올라가며 잠든 그의 얼굴을 살폈다. 흔들 의자에 앉은 여인은 갈변된 백합을 입에 문 채 헐벗은 그들을 응시한다. 핏발이 선 두 눈에 읽히는 것은 다만 구분할 수 없는, 일종의 유리알에 가까웠다. 로라스는 소년의 머리 아래 자리한 베개를 바로하며 축축한 이불 속으로, 소년의 곁으로 더욱 파고 들었다. 악몽이 언제나 그를 푸르게 좀먹었다. 알베르토 로라스라는 인간은 녹슬어 갔고 낡아만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에 익숙해져만 간다. 이젠 없는 아내와 함께 백골이 되어 간다. 길게 자란 머리카락이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사작대는 빳빳한 시트의 소리가 입속에서 바스라진다.
  다이무스 홀든은 제 등에 닿아오는 그의 가슴팍을 느끼며 눈을 뜬다. 그는 간간히 숨을 내뱉었을 뿐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이 깰까 팔을 둘러오지 못한 채 도드라진 척추에 코를 비비는 사내를 붙잡은 족쇠가 무엇인지 진즉 깨단하고 있었다. 알베르토 로라스는 필시 저와 같다고, 저 죽은 망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몸뚱어리라는 것을. 고개를 들어 마주한 여인의 시선에서 처연함이 떨어졌다. 달팽이들이 간 길에 점점이 남은 점액질처럼 투명하나 불쾌하기 짝이 없는 유의 것이었다.
  3년 간 그의 수업에 꼬박꼬박 출석해왔으나 다이무스 홀든이 그에게 가졌던 작은 관심이 무색하그로 그가 다이무스 홀든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년 가량이 흘러서의 일이었다. 모든 것들이 우연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었는데, 그 날은 유독 그러했다. 알베르토 로라스는 저를 향한 소년의 시선을 알아차리지도, 소년을 향한 자신의 시선을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시간을 보냈다. 그는 대부분의 삶을 요정과 함께 보내게 될 것이라 예견한 채 제법 많은 것들을 손에서 놓아버린 뒤였고 그것을 드러내기를 끔찍히 여기곤 했다.
  당신은 죽었어. 여인은 고개를 저었다. 소년은 남자의 허벅지 새로 다리를 얽으며 시트를 쥐었다. 여전히 요동치는 뱃속에 가끔 숨을 거세게 뱉어내며. 당신은 죽었다. 죽은 이다. 그는 몇 번이고 그리 여인에게 말했다. 좋지 못한 꿈을 꿨다는 사내에게, 다이무스 홀든이 배풀 수 있는 호의란 고작 그런 것이었다.

 

 

 

1) 다이무스는 어릴 적부터 귀신을 보는 능력이 있다. 그러던 중 아카데미의 문학 선생 로라스를 만나게 되고 로라스의 곁을 맴도는 한 여성을, 귀신을 자꾸만 보게 된다. 기실 그녀는 로라스의 전처로 이미 죽은 몸. 로라스는 매일 같이 그런 그녀를 보며 일상 생활을 이어가고 점점 무뎌져가게 된다. 그러나 그녀를 성불시키지 않는 것은 일종의 죄책감 때문(자신으로 인한 죽음이라는 생각). 그러던 중 꽁냥대다 제자 사이에 마음 없이 어쩌다보니 몸이 먼저 부딪히게 되는데 이때 로라스 내에서 도덕적인 붕괴가 일어났으면 좋겠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로라스 자신은 계속해 되뇌이고 다이무스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을 이어가고. 하지만 서로가 몰래 서로를 훑어보았으면 좋겠다. 필기를 하는 손, 수업을 하는 입술.


2) 로라스가 수업을 하면 여인은 교실의 뒤편 빈 의자 따위에 죽은 듯이 앉아 입에는 백합을 문 채 그를 노려보고 있으면 좋겠다.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 로라스는 아무렇지 않은 듯 수업하지만(자신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다이무스는 그런 그녀를 보며 로라스에게 악귀 따위가 붙은 게 아닐까 막연하게 생각하면 좋겠다. 서로가 귀신이 보이는 것을 몰랐으면.

 

3) 섹스를 할 때 다이무스가 로라스의 아내를 직시했으면 좋겠다. 등을 껴안으며 또박또박 입 모양만으로 ‘당신은 죽었어요,’ 라고 말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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