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렉다무. 다리오.

  층계참을 울리다 벽면을 울리다 사무실 얇은 문짝 앞에서야 마침내 멈춘 그 소리에 다이무스는 중지 끝으로 얇은 은테 안경의 측면을 밀어올리며 아주 잠시(그래, 아주 잠시) 시선을 제 명패 위에 두었다 다시 서류철 새로 처박았다. 등 뒤의 채광창 위를 가린 보랏빛 커튼은 산호초를 닮은 빛깔로 발광하고 있었고 다이무스는 등 뒤로 떨어지는 그 빛무리가 느른하게 제 목덜미를 애무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잠시 심호흡했고 가끔씩 따그닥대는 소리를 내는 문짝을 의식적으로 무시하며 잉크를 머금은 펜을 들었다.
  "다이무스."
  짙은 분홍빛으로 물든 종잇장이 물꽃처럼 부풀어 올랐다 꺼지기를 반복하고 투욱하고 엉긴 검은 잉크 방울이 그러나 서류 위로 한 방을 떨어진다. 아. 반사적인 음성이 튀어나갔다. 다이무스? 문밖에서 이어지는 음성에 그제야 다이무스는 제가 티끌도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했다. 투욱. 다시 한 방울이 떨어진다. 멍청하게 고개를 든 그는 결국 안경을 벗어 짜부라진 미간을 엄지와 검지로 한 번 문대고는 펜을 다시 책상 위 유기하듯 던져두었다. 들어간다? 그런 그를 알아차린 것처럼 사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진짜 들어간다? 다이무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깥으로 열리게 되어 있는 문이 복도의 복실과 카펫과 마찰하며 서걱대는 소리를 낸다. 벽과 부딪힌 문고리가 거센 소리를 내며 튕겨 올랐다. 남자의 손이 문을 그러당겨 닫는다. 정신을 차릴 수 없다는 듯 남자는 두어 번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사실."
  남자가 성큼 공간으로 들어섰다. 다이무스는 그 만큼의 공기가 방을 빠져나간 것만 같다고 느낀다. 그가 내뱉는 말들 사이사이에 들어간 숨표가 음율을 타는 것처럼 역동했다.
  "지금 조금 정신이 없다."
  나만 이래? 어느샌가 눈 앞으로 다가온 남자가 책상 위로 허릴 숙여 손을 뻗어온다. 드렉슬러? 시야 속에 그가 그득 찬다. 우스꽝스럽게도 아프지 않게 멱을 쥔 다리오 드렉슬러의 버석하게 마른 입술이 다이무스의 아랫입술을 물었다. 점점 삼켜간다. 다리오라고 좀 불러봐. 이빨이 닿는다. 그 와중 열린 잉크병의 뚜껑을 닫기 위해 허적이던 다이무스의 팔이 허공에서 정지했다. 어서. 치열을 두드리던 혀가 다이무스의 입술을 핥아올렸다. 입술만을 맞댄 채 잠시간 미동을 않는다. 다이무스 홀든은 마침내 한숨처럼 그가 바라는 말을 내뱉었다.
  “다리오.”
  잘했어. 톡하고, 목을 죄던 셔츠의 단추 하나가 다리오 드렉슬러의 손에 풀려나갔다. 다이무스는 다리오 드렉슬러의 무릎이 책상 위 서류들을 짓이기는 것을 희미한 정신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이내 혓바닥을 꾹꾹 눌러오는 그의 검지와 중지에 숨만을 삼켜댔을 따름이다. 아, 씨발, 한 달이었어. 숨표. 임무 때문에 밖으로 내돌린 나도 그렇지만. 두 번째 숨표. 한 달 동안 너는 회사로 찾아오지도 않았어. 다리오 드렉슬러가 응석을 부리듯 내뱉는다. 그의 송곳니가 목젖을 짓누르는 순간 다이무스 홀든은 고개를 뒤로 젖혔다. 무력한 초식 동물 따위가 된 기분이었으나 불쾌하다고는 느낄 수 없었다. 다리오 드렉슬러의 손가락은 잘 손질된 고기처럼 조금은 짰고, 목울대로 넘어오는 침이 조금은 달았다.
  다이무스 홀든은 제 몸을 뉘인 의자의 등받이가 뒤로 넘어가며 삐걱이는 소리를 들었다. 둘은 마치 조리개를 채 가리지 못한 사진 한 장처럼 느릿하게, 빛을 받으며 함락된다. 어깨 너머로 뻗어나간 팔이 커튼을 소녀의 옷깃이라도 된 양 더욱 여민다. 도시는 연극의 막 속으로 사라지고…… 셔츠 속으로 파고든 다리오 드렉슬러의 손이 허여멀건 피부를 더듬어 나가고 있었다.
  아직도 하루가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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