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다무. 샹들리에.

  암흑이 그들을 급습하기 이전부터 울리던 비명은 어느 순간엔가 침묵으로 화했다. 무엇인가가 깨지는 소리와는 별개로 마치 각광이 돌연한 사고로 파쇄되고 면막이 머리를 내려친듯한 암전이 찾아왔다. 군중은 벙어리가 되었고 연옥이 되었고 이내 산 지옥이 되었다. 묵직한 소음이 머릿속을 채운다. 이글 홀든은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뜨끈한 액체에 말을 아꼈다. 어디선가 괴괴한 외침을 삼키는 히끅임이 들려오고 불을 찾는 소란이 일었다. 엉덩방아를 찧은 하반신이 어딘가 뒤틀린 양 아려온다. 깨진 유리로부터 비산한 파편이 찢어놓은 눈꺼풀에 눈을 뜰 수 없었다. 이글 홀든은 손가락을 더듬었다. 그는 손을 놓지 않았다. 객석의 아래서 지분대던 연인의 손가락을 여전히 그의 손에 깍지를 낀 채 단단히 움켜쥔 채다. 희미하게 어둠 속에서 오가는 인영들이 보였으나 눈을 한 번 끔적이자 이내 어둠 저편으로 사라지고 만다. 그는 이 어둠에 익숙해지기를 포기한다. 다이무스. 속살거리는 목소리는 아비규환 속 유일한 설움처럼 느껴졌다. 그는 다이무스 홀든을 바라보지 않은 채 샹들리에가 달려 있었던 검은 천장을 응시했다. 그의 침묵하는 눈 위로 뚝뚝 떨어지는 것이 과연 핏물인지, 뚫린 천장으로부터 떨어지는 빗물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이글 홀든은 그의 머리 위로 빛이 쏟아지던 순간을 기억한다. 금박된 샹들리에의 지지대 첨단이 다이무스 홀든의 안방을 짓뭉개고 촛대를 쑤셔넣던 그 곱던 순간. 다이무스 홀든은 이글 홀든을 밖으로 밀쳐냈고 이글 홀든은 다이무스 홀든을 안으로 밀쳐냈다. 장식에 불과했던 수정들이 그의 머리 위 으깨져 유리꽃처럼 여즉 꺼지지 못한 촛불들의 일렁임에 빛났다. 채 1초가 되지 못하는 짧은 순간이었다. 이글 홀든은 다이무스 홀든의 싸구려 회백질로 덧바른 듯한 시선을 마주했다. 이글. 그리고 그의 입모양을 읽은 뒤 더없이 유쾌한 기분이 되어

  웃었다. 다이무스의 동공이 경악으로 잔물지고 형체 없이 어그러지기까지는 들숨 한 번이었다. 다이무스 홀든이 무너졌다. 그가 땅으로 꺼졌고 빛이 사라졌고 비명이 들려왔고 이글 홀든의, 조금 더 그 광경을 붙잡기 위해 감지 않았던 눈 속으로 유리 조각은, 아, 씨발, 이건 정말 환장하게…… 좋았다. 이글 홀든은 자신의 눈을 움켜쥐었던, 다이무스 홀든의 손을 억척스럽게 쥔 손의 반대편 손을 떼어내 허공에 털었다. 겉만이 바삭하게 말라붙은 핏방울은 마치 덜 굳어진 풀처럼 속을 토해내며 허공이 흩날렸다. 이글 홀든은 눈을 질끈 감았다 뜨기를 반복한다. 여전히 홀은 어둠 속이고 보이는 것은 없고 그의 오른 눈은 씨발스럽게 저며온다. 그는 다이무스 홀든을 밀어내는 것에 있어 망설임이 없었다. 그리고 부가적인 행운으로, 다이무스 홀든의 유언이 자신의 이름이라는 사실에 그는 발기했다. 텁텁하게 말라붙은 목구멍으로 웃음이 비져나오고 어둠 속에서 피가 묻은 손으로 그는 깍지 낀 다이무스 홀든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풀어낸다. 그리고 흉흉한 아래춤을 다이무스 홀든의 둥글게 경직으로 굳어진 손에 끼워 요분질시킨다. 그 억센 팔을 타고 흐르는 빗물인지 핏물인지를 윤활제 삼아, 퍽도 매끄럽게. 두어 번의 분탕질만으로 그는 사출했다. 달뜬 숨이 돌아가버린 눈 밑으로 스미어 나오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는 끈적한 액체가 엉겨 붙은 다이무스 홀든의 팔을 대리석 바닥 위로 떨군 뒤 바지춤을 정돈한다. 이글 홀든은 다이무스 홀든의 널부러진 손바닥을 아래로 뒤집어 준 뒤, 고개를 치켜든다.

  이 일련의 황음이 한 편의 연극처럼 흐르고서야 저 멀리서 다가오기 시작한 희미한 불빛은 차라리 죽어버린 그에 대한 기만에 가까웠다. 이글 홀든은 램프에 의지한 붉은 눈동자들이 저를 향하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를 책망해야하는 다이무스 홀든에게는 이제 눈이 없다. 허브리스는 언제나 이 사랑스러운 주인공을 벼랑으로 떠민다. 그는 쾌락에 비틀린 입술을 애써 아래로 꺾어 앙문다. 괜찮으십니까? 촛농에 눈을 데인 여자는 잔물잔물한 눈가를 화급히 가리며 램프를 향해 비명을 지른다. 치워요! 치워! 당장 치워요! 그 불을 치워요! 램프! 램프를 줘! 정돈되지 않은 고함소리가 무너진 방죽을 넘어 쏟아지는 썩은 물 같았다. 램프를 든 유일한 사내가 램프를 든 손을 치켜들어 조금 더 넓은 곳에 빛이 닿도록 했다. 사람이 더 올 겁니다. 박스석의 조명을 켤 거라고…… 그는 말했고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 연인들, 부부와 아이들은 안도했고 방사형으로 뻗어나온 샹들리에 아래의 팔다리들을 확인한 이들이 절규했다. 그리고 이내 막을 재차 걷어올리듯 박스석의 칸마다 하나하나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글 홀든은 잠시간의 고민 뒤 절규하기로 했으나…… 그건 그리 마음처럼 쉬운 일은 아니 되었다.

  이글 홀든은 그 누런 불빛에 의지에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쓸려나간 자욱이 선명한, 피에 젖은 손바닥과 시선을 조금 내린 곳에 자리한 다이무스 홀든의 팔은 어느 순간엔가 흔해빠진 장면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 연인은 죽음마저도 그를 멋질리게 만드는 낭만이 있었다. 참, 그는 말을 아낀 것이 아니다. 그저 필요하지 않았던 것 뿐이지. 다이무스 홀든이 그토록 아름다웠고, 그의 죽음은 차라리 이글 홀든을 위한 완벽한 레제 드라마에 가까웠다.




원본. 다이무스 샹들리에에 처맞아 죽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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