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다무. 구원.

  밤의 문을 열었고 해 질 녘의 문을 닫았다. 그 무수한 새벽의 틈바구니서 나의 꿈은 도시 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철겹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 누구도 묻지 않았음에도 쌓일 눈이네요, 하고 말한 한나는 창을 닫았다. 금세 김이 서리기 시작한 유리 위로 하얗게 육각 결정이 이음새를 맺었다. 늦은 겨울보다는 이른 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손등을 갖다 문댄 유리가 축축했고 얼음처럼 시렸다. 등을 진 벽난로에서는 나무 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온기 속에서 피곤이 손가락 끝 파슬파슬 공기 중으로 흩어지듯 간헐적으로 몰려왔다. 지독히 인위적이어서 불쾌하기 짝이 없는 감각에 발가락이 얼어붙어 썩어가기 시작한 것인지 아른아른 저렸다. 결과적으로 나는 아주 작게 뒤척였다. 가끔 푹 꺼진 바짓단이 펄럭였으나 여전히 고통은 없었다. 의식적으로 향하던 시선을 거두어 붉은 불길과 희게 질린 창틀에 붙박았다. 너의 얼굴이 보였다. 그 너머서 여전히 식어빠진 얼음알갱이들이 그림을 그리기 위한 종이처럼 쌓여가고 있었다. 


  날 고치려 들지 마. 아직 부서지지 않았으니까.


  다이무스 홀든이 죽었다. 흉포하게 흉곽을 뜯겨 꿰뚫린 심장은 확실히 멎었으니 그는 변명의 여지조차 없이 살해당했다. 하지만 나는 내 시체가 썩는 냄새를 맡지 못했다. 숨을 쉬는 것조차 가끔 잊어가며 고민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째서 고민할 수 있나를 여전히 고민하고 있었다. 내게 목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너의 억지스러운 입맞춤을 받고 이틀이 지나지 않아서의 일이었다. 두 눈을 떴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둠 속이었고 눈을 더듬기 위해 자유로운 손을 들었다. 손에 닿아오는 것 또한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눈꺼풀을 훑지 못한 손이 빈 공간을 허적였다. 그런 손을 차갑고 딱딱한 타인의 손이 한 번에 낚아챘다. 나는 어깨를 굳혔다. 일어났어? 미안해. 하지만 그것은 멀게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미안해. 그게 네가 의식이 돌아온 내게 가장 먼저 건넨 말이었다. 너의 손이 내 눈두덩 위로 내려 앉았다.

  "미안해, "라며 너는 강박적으로 사과했다. 조금도 미안하지 않은 목소리로. 그래도 아프지는 않잖아.

  눈가로 물기가 스멀스멀 번졌다. 눈물이었는가 벌어진 상처에서 흐르는 피였는가 알 수가 없었다. 이글 홀든. 너의 이름을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어나오는 것은 거센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뿐으로, 그마저도 입술이 아닌 목을 통한 것이었다. 서늘한 압감이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졌다. 너의 손가락이었다. 이따금 제대로 된 목소리가 튀어나올 때마다 너는 마치 길을 되짚듯 이전에 짓누른 곳을 더듬었다. 목구멍을 이렇게 막아야(그 순간 아, 하는 소리가 입술로 비져나왔다) 공기가 울려 목소리가 나오나 봐. 이해하기엔 어렵지 않았으나 납득하기엔 힘겨운 말. 난 형을 미워하지 않아. 너의 손은 내 뺨을 문질렀고 널 구원할 거야, 라며 웃었다. 아직 구원할 수 있는 것들이 네 속에 남아 있을 때, 내가 아직 너를 구원할 권리를 가질 때 내가 널 구원할 거야. 네가 자꾸만 속삭였다.


  이글, 나는 그러나 네가 여전히 품고 있는 의문들에 대한 답이 될 수 없을테고,

  너는 이 말을 들을 수도 듣지도 않겠지만.


  호흡조차 할 수 없는 몸뚱어리에선 가느다란 방부제의 향이 났다.

  퀴퀴하게 썩어버린 연명에서도 냄새가 난다면 필시 이런 냄새일 것이다. 


  꿈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언제나 간단했다. 새로운 꿈으로 빠져들어선 아가미를 절개 당한 물고기처럼 허파를 쪼그라뜨려 퀴퀴한 공기를 들이켜는 것이다. 현실은 끔찍했기에 합리화를 위한 꿈을 꿨다. 결코, 도피처가 될 수 없음은 알았기에 현실의 틀을 벗어나지는 못한 꿈을. 일부는 어린 시절의 것이었으며 일부는 이젠 없는 한때의 일상이었고 나머지는 내 일생 가장 죽음에 가까운 걸음을 옮겼던 하루 전부였다. 아니, 내가 죽은 날의 전부였다.

  그러고 보니 너는 일어나지 않을(불가능이라 여겨지곤 하는) 일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어중간한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는 갓난쟁이들에게 절박한 내일은 없었고 인간은 언제나 불가능한 것들에 희망을 변명처럼 덧붙여 만든 엉성한 집 한 채를 자신의 마음속에 지니고 자라난다. 가끔은 알아도 알지 못하는 척을 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네게 알려준 적이나 있었던가. 너는 연장자의 권한으로 영원했던 교훈들을 스스로 깨우쳤다. 결과적으로 나는 너를 비등하게 취급했고 너 또한 그러했다. 너와 나는 혈관 속을 타고 흐르는 어쩔 수 없는 무엇인가를 제한다면 완벽한 타인이었다. 감동적이고 허울 좋은 수직적 가족애라면 네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한 움큼 들이킬 수 있는 유의 것이었다하지만 그 이름과 그 피가 아니었다면 나는 넘어진 너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지도 네가 나를 따라오기를 기다리지는 않았겠지. 네가 내게 이토록 무거웠나. 책장에 베인 손가락을 입술로 가져다 물어 빨며 눈을 감았다.


  올려다본 하늘이 영영 내 것이 아니었다.




현 님 달성표 약속드린 글! 쪼꼼 더 여유가 날 때 내용도 길이도 수정될 것 같습니다! (8-8 )… 꾸준하게 연성하시는 현 님 보구 저두 힘내야긋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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