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다무. 조각글. 절취.

 썩 하얗지 않았다. 그의 손바닥에는 굳은 살이 있었고 굳은살이 박히지 않았던 자리에는 굳은살과는 조금 다르게도 잦은 물집으로 농이 져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글 홀든의 이빨이 언제나 그런 그의 살갗을 물어뜯었다. 그 다음에는 그 살갗 아래의, 약간은 분홍빛을 띄는 여린 살이었고. 다이무스 홀든은 이글 홀든은 밀어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 그가 이글 홀든의 기벽을 이해하려 든 것 또한 아니었다. 피를 닦아내는 손수건을 쥔 그의 손을 타고 올라가 마주한 그의 손톱은 언제나 단정하게 깎여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손톱의 하얀 부분은 경계가 일정치 않았다. 제가 물어뜯어버린 탓이었다. 손톱 뿌리의 초생달과 그 결을 그래도 이글 홀든은 사랑했다. 사랑이라는 말은 참 쉬웠다. 그는 턱을 괸 채 생각했다. 다이무스 홀든은 내가 하고 있는 것도 사랑이고 네가 하고 있는 것도 사랑이라고 말했다. 그는 얇다란 현관문이 그렇게 무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기에 홀로 남아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이 뒤엉킨 겨울이었다. 그들은 계절이 지나 입지 않게 된(혹은 못하게 된) 옷을 정리하듯이 살고 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었고 가을의 끝물 냄새가 앙상한 가지에 걸려있다 견딜 수 없게 되면 창문 새로 붉고 노오란 시쳇더미와 함께 틈입했다. 새벽녘이면 손발이 벌겋게 굳어 근질댈 정도로 공기는 이제 쨍하게 얼어붙었다.


  젖은 손을 쉰내 나는 수건에 문질러 닦았다. 손을 씻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나을뻔 했다. 오래된 수도꼭지에서는 녹내가 났고 물기를 닦아낸 수건에는 붉은 기가 묻어났다. 수도보다는 배관의 문제였다. 뒷골목과 인접한 싸구려 호스텔은 대개 이러한 형태다. 공동 욕실이 아니라는 것이 유일하게 장점인 숙소였다. 장기 투숙이었고 그리 비싸지는 않은 돈을 일시에 지불했다. 다 낡아빠진 외출용 누비아를 목에 두르고 맨발을 꿈지럭대던 앞니 없는 노파는 꼭 그 거리의 메타포처럼 끝이 검게 때 탄 뜨게를 쥐고 있었다. 건장한 사내를 어깨에 멘 청년에 그녀는 놀라울 만치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글 홀든은 자신들에게 신경을 끌 것을 그녀에게 당부했으나 마치 어쩔 수 없다는 듯 호스텔의 청소부는 홀든이 방을 비울 시간이면 문을 열고 들어와 탁자 위에 놓인 메모지를 바로하고 침대의 시트를 정리하고 타일 위 고인 물들을 멀끔히 닦아놓고 제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가 알아보려 하지도 않은 채 문을 다시 잠그고 그들의 인생에서 꺼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턴가는 들어오지조차 않게 되었다. 시트가 체액에 절기 시작한지 3일도 되지 않아서의 일이었다. 유쾌한 일이었다. 다이무스 홀든의 눈치를 더는 보지 않아도 괜찮아졌으므로 이글 홀든은 더욱 질펀히 뒹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배려가 필요한 개인적인 취향적 기호는 어쩔 수 없는 일이어서(다이무스 홀든은 매 번 눈을 뜰 적이면 헛구역질을 해댔다. 진동하는 정액 냄새는 제법 지취에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이글 홀든은 '안타깝게도' 사디스트가 아니다.) 이글 홀든은 다이무스 홀든을 티파티에 끌려간 소녀의 곰인형처럼 소파에 가만 손을 무릎 위 모아 앉혀두었고 고개가 풀썩 오른쪽으로 대 꺾인 해바라기처럼 무너지면 작은 쿠션을 괴 바로해준 뒤 시큼한 냄새가 지독한 시트를 욱여 세탁실에 내놓았다.


  밤이 되면 건넛방의 수도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으나 다이무스 홀든은 깨어나지 않았다. 이글 홀든은 애초 잠들지 못했다. 결국 타협점으로 그들은 낮에 침대를 공유했다. 팔꿈치 안엔 주삿바늘로 말미암은 붉은 점이 질병같았고 딱딱하게 굳어진 여린 살에 반대편 팔꿈치 안에 새로운 주삿바늘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미간을 찌푸리던 그도 어느 순간엔가 말을 않게 되어갔다. 통각은 없었지만 쾌감도 없었다.


  적당하게 충혈된 눈은 세상을 담기에 용이했다. 그의 흰자위에는 장미가 피었다.

  "다이무스."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다이무스 홀든은 눈동자를 굴려 이글 홀든을 응시했다. 호명에 답하기 위해서가 아닌, 마치 귓가에서 우는 새의 정체를 알기 위해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린 것 같았다. 그 증거로 다이무스 홀든은 비의식적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없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이무스 홀든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지친 눈꺼풀을 닫았다. 다음 날, 다이무스 홀든은 눈을 떴고 끔벅였고 손을 들어 자신의 입 안을 굴러다니는 텁텁한 물체를 잡아 꺼내려 했으나 그에겐 팔이 없었고 손이 없었고 손가락이 없었고 마침내 포기하듯 그것을 뱉어내려 한 순간 자신에게 혓바닥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무척이나 비현실적인 감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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