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다무. 수조.

  뿌리에 굳은 살이 박힌 젖은 손가락이 하염없이 수조의 테두리를 맴돌았다. 한 번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묻어나오는 녹가루를 바지에 비벼 닦는다. 퀴퀴한 이끼 썩는 냄새가 비강을 파고들었다. 방을 그득 메운 악취에 익숙해진지는 제법 적당한 시간이 지났다. 수면의 위를 덮은 부연 막 위로 피어나는 곰팡이가 퍽도 보드랍게 부유한다. 초점 없는 동공이 질식하듯 안방 속 들떠 팽창해 있다. 이글 홀든은 나태히 배를 드러낸 몸을 뒤집어 엎드려 수조의 투명한 유리에 뺨을 갖다댔다. 부글부글 물이 끓고 숨방울이 피어오르는 소리가 여즉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럴 리가 만무했음에도 허우적대는 몸부림과 원망스러운 눈빛에서부터 흐르던 시큼털털한 감정이 혓바닥 아래 괸 것 같기도 했다. 턱을 괸 채 얇은 유리 너머의 세계를 그는 만족스럽게 감상한다.

  혼탁하게 흐려져버린 폐수를 갈지 않게 된지 며칠이 지났는가는 떠올릴 수 없었다. 다이무스 홀든의 마지막 숨은 퍽도 일렀다. 비늘처럼 저며둔 살갗이 기종처럼 부풀어 오르는 순간을 이글 홀든은 기껍게도 함께했다. 고작 몇 분이었다. 처음 하루 이틀은 하늘대며 부유하는 것에 흥미가 일어 물을 갈아주었으나 이후로는 그저 수조의 곁에서 시간을 보내며 흐르는 시간을 가늠했다. 어느 순간엔가부터는 녹아내린 살점이 썩은 물과 뒤섞여 손을 댈 수 없는 지경이 되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아무리 물을 갈아주어도 신체의 내부서부터 진행되는 부패를 막기란 불가능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장기를 꺼내 솜 따위를 채워넣어 박제따위를 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잠시 했던 것도 같다. 확실하진 못했다. 이글 홀든의 시간은 현재형이었고 다이무스 홀든이 곁에 있는 지금도 놀라울 정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글 홀든은 금세 싫증을 느꼈고 다이무스 홀든의 익사체는 아직까지는 가장 다이무스 홀든이다. 그와 숨을 함께하던 금붕어들의 시체가 허옇게 배를 까뒤집어 뜬다. 혈육을 닮아간다.

  이글 홀든은 대부분의 시간을 다이무스와 함께 보냈다. 귀여워했고 미워했고 가끔은 증오하다 마지막엔 사랑했다. 팔다리가 묶인 채 저항않던 그는 제 살점이 포 떠진 때에도 신음 한 점 내뱉지 않았다. 뺨에 닿는 체념의 시선에 전율이 일었다. 포기했어?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듣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틀어막힌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신음과 붉은 고통으로 질려가는 두 눈이 꼭 값비싼 예술품 같았다. 가치를 제대로 알고 싶지 않았던, 언젠가의 저택의 복도에서 스산하게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맞이해준 그런 유의 사치품.

  채 떨어져 나가지 못한 살점들이 모양 좋은 근육 위 비늘처럼 일어났다. 이글 홀든의 손가락이 하나하나 그러한 피부를 들춰내고 하비어내 기어이 찢어낸다. 진피인지 근육인지를 건드린 탓인지 끊임없이 피가 흘렀다. 목을 베고 배를 가르는 것과는 흥미롭게도 달랐다. 벌어진 살점 새로 맺히기 시작한 핏방울은 어느 순간엔가 고인 뒤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흘러내렸다. 다이무스 홀든의 손가락 새를, 가슴팍을 타고 한 줄기씩 길을 내며 빗물처럼 떨어진다. 상당했다는 말로는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글은 그런 것들에 관심이 없었다. 흉이 진다면 그것 나름 괜찮았고 죽는다면 그것 나름 황홀했다. 피로 세신한 것처럼 시뻘겋게 물든 나신은 기실 어떠한 상처를 입었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다이무스 홀든은 자주 기절했다. 이글 홀든은 고문에는 요령이 없었다. 물론 그는 다이무스 홀든을 고문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그 행위가 ‘일반적으로는’ 고문으로 쓰인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탓에 첨언한다.

  젖은 수건이 몸에 닿는 순간 다이무스는 정신을 놓은 채 한 번 거세게 튀어올랐다. 이글 홀든은 그가 정신을 차리기를 기다렸으나 그 이후로 움직임은 없었다. 뒈져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비늘처럼 일어난 피부의 결을 따라 핏물을 닦아냈음에도 스멀스멀 다시금 맺히기 시작하는 핏방울이 고왔다. 되려 핏물에 절어버린 것은 이글 홀든의 손이었다. 그는 젖은 손가락을 세워 다이무스의 코 아래에 댔다. 희미하게 시린 숨결이 느껴졌다.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로 그는 더욱 거침이 없어졌다. 제 혈육과 그 약혼녀가 기거했을 방의 한 구석에 늘어진 누비아가 이젠 다이무스 홀든의 손목을 죄고 발목을 죈다. 그 즈음, 다이무스 홀든은 눈을 끔적였다. 한눈에도 지쳐 있는 기색이 역력해 이글 홀든은 혀를 찼다. 전장에서의 그였다면 지독하게 선정적인 그 시선을 여즉 제게 쏘아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 고고한 자존심에 먼저 끈을 놓는 것이 그일 수는 없었다. 불구하고 다이무스 홀든은 더는 저항하지 않는다. 폭력의 산물이라기엔 어색하리만치 모든 것이 하느적대며 흘러갔다. 다이무스 홀든은 이글 홀든에게 기대하는 일 없었다. 당연스러운 실망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점에 언제고 토악질이 나올만치 배알이 뒤틀려왔다. 결코 가늘지 않은 손가락이 유두를 짓이기자 다이무스의 손가락이 꿈직댄다.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이글 홀든에겐 충분했다.




원본. 난 지금 아무 생각이 없다.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말만 잔뜩 하고 적지는 못하겠다구 한다~!

'Cypher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틴다무. 미카엘.  (0) 2014.09.07
이글다무. 조각글. 절취.  (0) 2014.08.31
이글다무. 죽어라. 미완.  (0) 2014.08.17
이글다무. 자살. 미완.  (0) 2014.08.13
이글다무. 샹들리에.  (1) 2014.08.08